그렇다면 나는 웃는 것만으로도 이겼을터
새벽이 불타오를때 - GunGrave OST

좋아하는 노래(c.f http://blog.naver.com/qkrrlgus1985.do?Redirect=Log&logNo=60028015004) 라서 트랙백합니다.


 이사오기 직전, 2주전에 애니를 다 보았습니다. 브랜든 히트가 죽는 것 까지만 보고 굉장히 오랫동안 안보다가 스즈미야 하루히 덕에 좋은 애니들을 몇개 골라보면서 다시금 찾았습니다. 주인공이 죽기에 후반이라고 생각하고 뒤부터 찾았었는데 브랜든이 죽는 곳이 반즘이었더군요. 14화여서 고생했습니다.

 애니메이션은 전체적으로 템포가 떨어집니다. 잔잔한 분위기에서 멋진 남자들의 이야기를 감동적으로 그려내는데 게임은 팬들에게만 평작 수준이었지만 신났던 것에 반해 애니메이션은 전투조차 언제나 한 숨 돌리죠. 그래서 집안일 하거나 운동하면서 봤습니다 :)

 애니메이션을 보면서 느낀건 느리다는 것 외에도 스토리 라인의 차이였습니다. 게임은 Over Dose였을터인 Gungrave O.D 까지 두편이 있으며 게임이다 보니 연출이나 효과 면에서 전체적으로 시각효과가 애니메이션보다 멋지고 전투도 격렬합니다. 적들이 뻥뻥 죽어나가는 것은 납득하고 있었는데 해리 맥도웰의 아내이자 베어워켄의 딸인 셰리가 죽는 장면에서 이상하다 싶더니 해리가 인간인 채로 고생하는 걸로 다른 스토리라고 느꼈습니다. 그 때까진 게임과 같은 결말이 나올 줄 알았지만 애니메이션의 결론도 멋지고 현실적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애니메이션에만 있는 비욘드 더 그레이브의 참회나 블러디 해리의 사죄는 가슴 아팠고 엔딩에서 죽어버린 영웅들이 하나씩 하나씩 브랜든과 해리의 이름을 부를 때는 눈물이 났습니다. 그래요, 브랜든은 해리를 선택했죠. 해리의 실수로 결과적으로 빅대디를 택하게 되지만 죽어서까지 친구를 포기하지 못하는 배신하지 않는 그의 모습이 감동적입니다.



아래는 옛날에 쓴 관련글로 싸이월드 다이어리 발췌입니다. 2년전인지라 치기 어린 부분이 많이 보입니다만 원문 그대로 붙여둡니다.

2005.09.13 (2005.09.14 21:51) 

요즘 닷새째 건그레이브 ED 싱글 돌려듣는거다.

 

감상 포인트는 후렴가사. 「」로 묶은데는 관철의 정수.

 

총 3절에 걸쳐 조금씩 변화하는 아름다운 운율. 깨달음

 

자 Let's Rock(?)

 

따지지마. 고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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穿色が燃えるとき

 

テレビ東京系 TVアニメ「GUNGRAVE」エンディングテ-マ

 

TV도쿄 계열 TV애니메이션「건그레이브」엔딩 테마

작사 小山 周  

작곡 松木奉二郞  

편곡 Scoobie Do  

노래 Scoobie Do

 

明日(あした)を 今(いま)に 塗(ぬ)り變(か)えてく

始(はじ)まりは 痛(いた)みと 淚(なみだ)  

아시타오 이마니 누리카에테쿠 하지마리와 이타미토 나미다  

내일은 지금으로 다시 바꾸어가네 시작은 아픔과 눈물

 

散(ち)らばる 孤獨(こどく) 貫(つらぬ)いてく 鼓動(こどう)は

無常(むじょう)の 彼方(かなた)  

치라바루 코도쿠 츠라누이테쿠 코도오와 무죠오노 카나타  

흩어지는 고독감을 관철하네 고동소리는 무상한 저편

 

「今(いま) いる この 場所(ばしょ)は すり減(へ)るだけの ゲ-ム」

「이마 이루 코노 바쇼와 스리헤루다케노 게에무」  

「지금 있는 이 곳은 모두 지기만 하는 게임」

 

それなら 俺(おれ)は ただ 笑(わら)うだけで 勝(か)てるはず  

소레나라 오레와 타다 와라우다케데 카테루하즈  

그렇다면 난 그저 웃기만 하면서 이겼을텐데

 

夜(よる)を 超(こ)えてゆけ  

요루오 코에테유케  

밤을 넘어서 가자

 

今(いま)に 言葉(ことば)も 何(なに)も なくなって

驅(か)け出(だ)す ブル-スが  

이마니 코토바모 나니모 나쿠나앗테 카케다스 부루우스가  

이제는 할 말도 아무것도 없어져서 달려나간 블루스가

 

夢見(ゆめみ)るだけの 自分(じぶん)を 投(な)げ出(だ)して  

유에메루다케노 지부웅오 나게다시테  

꿈꾸기만 하는 자신을 던져버려

 

今(いま)に 刹那(せつな)も 永久(とわ)も

消(き)え去(さ)って 殘(のこ)された この 身(み)が  

이마니 세츠나모 토와모 키에사앗테 노코사레타 코노 미가  

이제는 한 순간도 영원도 전부 사라져서 남겨진 이 몸이

 

望(のぞ)みのままに 燃(も)え上(あ)がるまで  

노조미노마마니 모에아가루마데  

바램대로 타오를 때까지

 

 

昨日(きのう)を 今(いま)に すり變(か)えてく

あの 歌(うた)は 時代(じだい)の 淚(なみだ)  

키노오오 이마니 스리카에테쿠 아노 우타와 지다이노 나미다  

어제를 현재로 몰래 바꾸어가네 저 노래는 시대가 흘리는 눈물

 

汚(よご)れたままで 振(ふ)り返(かえ)れば

この 道(みち)は 矛盾(むじゅん)と 愛(あい)さ  

요고레타마마데 후리카에레바 코노 미치와 무쥬운토 아이사  

더러워진 채 뒤돌아보면 이 길은 모순과 사랑이야

 

「今(いま) いる ここからは 落(お)ちてくだけの ゲ-ム」  

「이마 이루 코코카라와 오치테쿠다케노 게에무」  

「지금 있는 여기서부터는 떨어지기만 하는 게임」

 

それなら 俺(おれ)は ただ 踊(おど)るだけで 勝(か)てるはず  

소레나라 오레와 타다 오도루다케데 카테루하즈  

그렇다면 난 그저 춤추기만 하면 이겼을텐데

 

夜(よる)を 超(こ)える 夢(ゆめ)  

요루오 코에루 유메    

밤을 뛰어넘는 꿈

 

今(いま)に 言葉(ことば)も 何(なに)も

なくなって 走(はし)り出(だ)す リズムが  

이마니 코토바모 나니모 나쿠나앗테 하시리다스 리즈무가  

이제는 할 말도 아무것도 없어져서 달려나간 리듬이  

 

くたびれたままの 夜明(よあ)けを 投(な)げ捨(す)てて  

쿠타비레타마마노 요아케오 나게스테테  

지쳐있는 새벽을 던져버리고  

 

今(いま)に 刹那(せつな)も 永久(とわ)も 消(き)え去(さ)って  

이마니 세츠나모 토와모 키에사앗테  

지금은 한 순간도 영원도 전부 사라져서  

 

吐(は)き出(だ)す この 歌(うた)が  

하키다스 코노 우타가  

토해내는 이 노래가  

 

悲(かな)しみの 果(は)てに 燃(も)え上(あ)がるまで  

카나시미노 하테니 모에아가루마데  

슬픔이 끝나는 곳에서 타오를 때까지

 

見(み)つからないまま 立(た)ち盡(つ)くす  

미츠카라나이마마 타치츠쿠스  

발견되지 않은 채 계속 그 자리에 서있네  

 

赤(あか)すぎる 空(そら) 見(み)てた  

아카스기루 소라 미테타  

너무나 붉은 하늘을 보았어

 

「今(いま) いる ここからは 落(お)ちてくだけの ゲ-ム」  

「이마 이루 코코카라와 오치테쿠다케노 게에무」  

「지금 있는 여기서부터는 떨어지기만 하는 게임」  

 

それなら そう! 誰(だれ)もが 踊(おど)るだけで 勝(か)てるはず  

소레나라 소오! 다레모가 오도루다케데 카테루하즈  

그렇다면 그래! 누구든지 춤추기만 하면 이겼을텐데  

 

夢(ゆめ)を 超(こ)える 夢(ゆめ)  

유메오 코에루 유메    

꿈을 뛰어넘는 꿈

 

今(いま)に 言葉(ことば)も 何(なに)も なくなって

驅(か)け出(だ)す ブル-スが  

이마니 코토바모 나니모 나쿠나앗테 카케다스 부루우스가  

이제는 할 말도 아무것도 없어져서 빨리 달려나간 부르스가  

 

夢見(ゆめみ)るだけの 自分(じぶん)を 投(な)げ出(だ)して  

유에메루다케노 지부웅오 나게다시테  

꿈꾸기만 하는 자신을 던져버려

 

今(いま)に 言葉(ことば)も 何(なに)も なくなって

走(はし)り出(だ)す リズムが  

이마니 코토바모 나니모 나쿠나앗테 하시리다스 리즈무가  

이제는 할 말도 아무것도 없어져서 달려나간 리듬이  

 

くたびれたままの 夜明(よあ)けを 投(な)げ捨(す)てて  

쿠타비레타마마노 요아케오 나게스테테  

지쳐있는 새벽을 던져버리고  

 

今(いま)に 刹那(せつな)も 永久(とわ)も 消(き)え去(さ)って  

이마니 세츠나모 토와모 키에사앗테  

이제는 한 순간도 영원도 전부 사라져서  

 

吐(は)き出(だ)す この 歌(うた)が  

하키다스 코노 우타가  

토해내는는 이 노래가  

 

悲(かな)しみの 果(は)てに 燃(も)え上(あ)がるまで  

카나시미노 하테니 모에아가루마데  

슬픔이 끝나는 곳에서 타오를 때까지

 

 

 

헨리...였나. 그는. 비욘드 더 그레이브.

 

브렌든 히트를, 평생에 단하나의 친구를 살해한 바보.

 

플스2로 나온 타이틀에서 내가 복수했지만,

 

그 또한 슬픈 인물.

 

밤을 뛰어 넘어 꿈을 만들었지만

 

꿈을 뛰어 넘은 꿈에 지는 슬픈 숙명.

 

Gun Grave가 더 강한 死人이었을뿐.

 

단지 그것 뿐이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야.

 

그렇지? 미카.

 

 

눈앞에 선한 영상. 그 둘이 아직은 미움도 원한도 없이

 

순수하게 어깨를 나란히 하고 지평선을 향해 끝없이

 

젊음을 불태우며 달려가는 1분 30초간 반복되는 짧은 장면

 

 

그리고 또 하나. 브랜든 히트가 죽은 날. 엘리베이터의 해리.

 

아아 해리 였군. 성은 기억이 나려다 말았다. 해리포터 섊 -_-

 

그래. 해리 맥도웰이었군.

by 박기현 | 2007/02/01 00:38 | 트랙백(1) | 덧글(1)
미성년자는 언어 그대로 미완성이므로 파괴적 행위가 금지된다.
미성년자는 왜 Sex를 할 수 없도록 하는가?

 개인적으로는 이 주제에 대해서 고민하지 않았다. 개인적 관심은 한국에서 그 아름다운 미풍양속과 자연스러운 애정표현이 상당히 많은 부분 배치되는 상황에서 어떤 것이 합리적이고 옳은 것인가에 있었다. 그러나 이 주제에 관해 넓은 시각으로 잘 표현할 수 있을거라 생각하여 트랙백을 작성한다.

 우선 위 글의 논지를 따라가 보자.

섹스(sex, 성행위. 이하 섹스)에 임신이 따르지 않는다면 괜찮은가?

사회적 책임이 따른다면 구체적으로 무슨 책임이 필요한가?

술과 담배와 같이 육체적으로 해로운가?

미성년자의 섹스가 만일 합법이라면 부도덕하다는 판단의 근거는 무엇인가?

성적(성취)에 악영향이 있으므로 금지하는 것 인가?

왜 친구는 섹스를 할 수 없는가?

왜 섹스는 부도덕한 것인가?


 이상이 논점이 된다고 생각한다. 이 시점에서 가장 먼저 설명해야 할 것은 마지막 질문이며 전체를 아우르는 주제인 섹스가 부도덕하게 터부시 되는 이유일 것이다. 이는 가부장제, 나아가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에 나오는 난자와 정자의 진화 전략차이에 따른 생존 전략 분화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요지는 난자가 양육을 떠맡을 여지가 많아 불리하기 때문에 성행위 거부라는 유일하고 강력한 전략으로 자식 양육에 대한 투자를 받아낸다는 것인데, 인간은 동물의 특성에서 많이 벗어난 존재이므로 이것만으로는 부적절하다. 생물학적으로 양육을 도맡은 여자들이 남자들에 비해 지위가 낮아지는 이유에 대해서는 진화론과 같이 설이 분분하지만 일반적인 정론은 사회의 산업과 생산, 문화가 발전함에 따라 남자의 역할이 커졌기 때문으로 간단히 말할 수 있다.

 이런 사회 발전상에서 여자는 여전히 자녀 생산과 양육이 주요 역할인데 반해 남자는 여러가지 역할들을 맡게 되었으며 이는 fireman과 같이 직업이름에 아예 man이 포함되는 경우가 많은 사실로도 쉽게 알 수 있다. 생물은 자신의 자식을 통해 자신의 유전자를 남기려 한다는 데에 반론은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인간도 마찬가지의 욕망을 갖고 있는데, 부모의 자식 사랑이 이 생물학적인 욕망으로만 설명할 수는 없지만 인간 역시 자신의 자식에만 막대한 투자를 하는 것을 보면 인간 역시 이 욕망이 잘 적용된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배경에서 남자들은 자신이 벌어온 자원을 자신의 자식이 확실한 자녀에게만 투자하고 싶어하며 물론 속고싶어하지 않는다.

 사전 설명이 불필요하다시피 길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동물은 본디 자기 자식만 기르고 싶어한다는 것 이다. 그 이유가 어떻든 간에 이 철칙에 따라 인간도 자신의 자식이 확실한 아이에게만 투자를 하고 싶어했으며 양육에 필요한 자원은 남자가 생산하는 것이 절대 다수였으므로 자연스레 여성의 권리를 탄압하게 된다. 여성의 행실에 관해 갖가지 꼬리표와 제약이 붙어서 다른 남자의 자식이 생산되어 자신의 자원을 탈취해 갈 여지를 없애버리는 것이다. 가장 근본적이면서도 남자 입장에서는 가장 간단한 것이다. 자신은 희생하지 않으므로 여자를 희생시켜서 남편 외에는 섹스 할 수 없도록 사회적 억압을 가하는 것이다. 이상이 섹스가 부도덕하고 터부시되는 이유이다.

 이상의 추론에 근거하면 사생아나 질병의 발생 외의 경우, 즉 해가 없는 경우엔 섹스를 억압하는 움직임은 불합리한 것 이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하지만 이 결론도 비약이 심하고 친구간의 섹스와 미성년의 섹스와 무분별한 섹스가 자녀를 생산하지 않는 상황에서 억압받는 이유를 설명하지 않고 있다. 그렇다고 기성 가치관의 지속적인 시대착오적 발휘라는 설명도 그리 설득력있어 보이진 않는다.

 이제까지의 추론은 섹스가 부도덕한 행위로 정해진 이유가 자신의 자녀임을 보증하는 강력하고 확실한 수단이기 때문이라고 했는데, 이는 많은 부분의 이유이지 전부가 아니다. 우리가 더 고려해야 할 상황은 살짝 언급한 질병과 사생아이다. 우리가 현대 사회에서 성병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AIDS(후천성 면역 결핍증)을 비롯해 성기로만 감염되는 질병은 굉장히 많으며 목숨을 잃거나 성 불구가 되는 경우도 많은데 비해 그 예방과 증세 판단이 어렵다는 것이 문제이다. 가장 치명적인 AIDS만 해도 보균자가 외견적 특이성을 보여주지 않는 경우가 많아서 억울한 피해자가 생기는 경우가 많다. 사생아의 경우 낙태의 윤리적 문제를 차치하고서라도(태아의 생명이 어디서부터 시작되는가와 인간절대지상주의가 많이 얽혀있는 어려운 문제이다.) 산모에게 엄청난 후유증을 남기며 이는 여성에게 성병 못지 않은 공포이다. 그렇다고 사생아가 생기는 것은 단연코 옳은 일이 아니므로 얘기할 가치도 없다고 생각한다.

 자 이제는 인류의 위대한 발명품 중 하나인 콘돔을 도입해보자. 사생아의 위험도 0.02%로 줄여주며 성병도 거의 완벽하게 예방해주는 콘돔을 사용한다면 모든 섹스는 도덕적으로 비판받을 이유가 없는 것인가? 개인적으로 이번에도 '모든' 섹스가 허용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이는 섹스 뿐 아니라 모든 신체적 접촉이 정신과 매우 밀접한 연관이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쉽게 납득할 수 있을 것이다. 싫어하는 사람과는 스치기도 싫고 같은 공간에 있는 것도 싫은게 사람 마음인데 신체적 접촉이 가장 최고조에 달한 섹스는 쉽고 편하고 헤프게 할 수 없다. 물론 행위자체는 할 수 있는데 여기서는 인간이 스스로 온전하고 건강한 능동적인 개체가 되는데에 대한 당위성이다. 간단하게 자신의 경험을 돌아보자. 자신의 아는 범위에서 '헤픈' 남녀들이 진지하고 건강한 사람인가. 그들은 진정한 행복을 깨우치고 경진하며 살고 있는가. 무분별한 섹스는 자기 학대와 다름아니며 이를 통해 얻는 것은 질병과 사생아와 고통과 피로와 시간낭비 뿐이다.

 미성년의 경우 그들의 정신과 자아가 온전하지 못하다는 것을 고려했을 때 특히 금지하는 것 이며 이는 담배와 술과 같이 생각해도 별 무리는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서구 사회에서 2차 성징이 한창 일어나는 나이 대에서 첫 경험을 위한 섹스와 쾌락을 위한 섹스가 많은 것을 보면 인간이란 힘을 손에 넣으면 써보지 않고서는 못 배기는 슬픈 동물이라는 얘기가 딱 들어맞는다고 생각한다. 그들에게 몸이란 놀이도구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by 박기현 | 2007/01/20 20:34 | 트랙백 | 덧글(13)